“정치권력이 행정력보다 기형적으로 비대한 현실에서 행정 실무를 담당하는 공무원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

우리나라 삼권분립은 견제와 균형을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정치권력을 받들기 위한 도구로 존재할 뿐이다. 입법부 중심의 거대 정치권력에 행정부와 사법부가 들러리 서고 있는 형국이다. 대통령은 행정부 수반이 아니라 정치권력의 수장으로 행정부와 사법부를 통제해왔다.

정당을 등에 업은 정치권력은 이권을 챙기기에 골몰하고 있다. 이권 투쟁을 벌이다가도 정당의 이익을 위하는 일이라면 협치를 펼친다. 이권 카르텔의 뿌리는 사실 정치권력이 먼저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 5월 2분기 경상보조금 119억3344만 원을 7개 정당에 지급했다. 경상보조금은 정치자금법에 따라 각 정당에 분기별로 지급되는 돈이다. 지난 2분기 정당별 보조금은 더불어민주당이 55억6541만 원, 국민의힘 50억4303만 원, 정의당이 8억68만 원을 챙겨갔다.

이 돈이 어디에 어떻게 쓰이는지 국민은 모른다. 국민의 세금으로 준 돈인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이 돈의 사용처를 묻지 않는다. 건설업계 이권 카르텔, 금융권 이권 카르텔에 앞서 정치권력의 이권 카르텔도 뿌리 뽑아야 한다. 정당에 빚진 적 없는 정치 신인이라면 시도할 수 있는 일이다. 어쩌면 국민은 정당세력과 무관한 신인을 내세워 '패륜 정당'의 정화를 기대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를 보면 여당은 국민의 이 같은 바람을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지난 문재인 정부는 정권이 들어서자마자 국토교통부에 4대강 사업 특별조사팀을 꾸렸다. 댐 건설을 관장하는 한국수자원공사를 환경부로 이관시키고, 4대강 사업을 반대해온 환경론자를 사장 자리에 앉혔다. 또 오랜 세월 국가사업으로 성장시켜온 한국형 원자력발전소를 하루아침에 없애고 온 산야에 태양광을 심었다. 여기에다 김현미 장관을 필두로 부동산 3법 개악(改惡)을 추진했다. 

개악인 줄 알면서도 정권의 시녀에 불과한 행정부처 공무원은 따라야 했다. 개악을 추진했던 당시의 실무진은 “누군가는 해야 되는 현실, 나 아니면 후배가 짊어져야 하는 일”이라며 추진했다. 그는 관료사회의 ‘모범 선배’로 지금은 국토부 산하 협회에서 회장직을 수행하고 있다. 불똥이 그곳까지 튈지 아직은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 정권에서 주택 통계 실무부서에서 일했던 국토부 고위직이 줄줄이 좌천을 겪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하는 현실’이기에 수행했을 뿐인데, 지금 인사상의 불이익을 받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공무원을 정치세력화 시킨다며 지난 정권을 향해 ‘망나니 인사정책’이라 비난했었다. 지금의 국토부 인사정책은 과연 지난 정권과 다른가. 이제 어느 공무원이 조직의 수장을 믿고 업무에 열정을 다하겠는가. 특히 이번 인사 기안에 결재 도장을 찍은 국토부 수장은 늘 대권 주자로 거론되는 원희룡 장관이다.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수결했다고 하니 더욱 실망스럽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선거는 인사권 수렵행위(獵官制)다. 장관과 공기업 수장 자리에 선거 공신을 앉히는 것도 일정 부분 허용된다. 그러나 조직 구성원까지 정치세력으로 묶어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옳지 않다. 지난 정권의 실무적 과오를 묻고 싶으면 수장 김현미 하나로 족하다. 행정부처 7급 공무원 발끝에도 못 미치는 수준의 정치가들이 감히 행정조직의 구성원까지 지배하려 해서는 안된다. 현 정권이 관료사회에서 신뢰를 잃지 않으려면 실무자 구제와 함께 공무원 사기앙양에 노력해야 한다. 

덧붙여 인적 쇄신을 하려거든 지난 정권에서 임명된 ‘정치 세력’부터 정리하는 게 우선이다. 아직도 국토부 산하 공기업과 협·단체에 지난 정권 인사가 버티고 있다. 차라리 비난을 받더라도 이들부터 정리하는 게 옳다. 정권이 바뀌자 초개와 같이 직을 버리고 떠난 인걸도 있지만, 아직도 꾀돌이처럼 이쪽저쪽에 빌붙으며 후배들 기회마저 박탈하고 있는 모리배는 솎아내야 한다. 

인적 쇄신을 위한 인사, 그 누구도 관여할 수 없는 조직 수장의 고유영역이다. 그러나 인사(人事)가 만사(萬事)다. 신뢰를 잃으면 모든 걸 잃을 수도 있다. 

 

2023년 8월 3일

조관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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