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어이 통과되고 말았다. 지난 8일 국회는 본회의를 열고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을 전광석화같이 통과시켰다. 산업재해나 사고로 노동자가 사망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이나 10억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근로자 사망에 7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 산업안전보건법보다 훨씬 세다. 공포 후 1년이 지나면 시행된다. 단 개인사업자 또는 상시근로 50명 미만인 사업장과 건설업의 경우 공사금액 50억 원 미만 공사에 대해서는 3년 유예기간을 뒀다. 


하나 더. ‘중대재해법’이 국회를 통과한 지 나흘 만인 12일에는 또 하나의 폭탄이 터졌다.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산업안전보건법 양형기준을 대폭 상향했다.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지키지 않아 사망 사고가 나면 기업 책임자 등을 최대 10년6개월 징역형에 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죄질이 좋지 않은 경우에는 법정 최고형인 징역 7년까지, 같은 사고가 발생하는 ‘다수범’, 또는 ‘5년 내 재범’ 영역에 들어가면 법정 최고형의 2분의1까지 가중 처벌한다. 최대 징역 10년6개월까지 선고가 가능하다는 얘기다.


서슬 퍼렇다. 등골이 오싹하고 모골이 송연해진다. 이렇게 ‘원 플러스 원’으로 몽둥이질을 한다고 해서 산업현장의 죽음의 고리가 끊어질까. 규제가 만능이고 능사가 될 수 있을까.


경제계가 분노하고 있다. 권력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재계단체와 경제인들이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것이다. 현안에 대해 대체적으로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 왔던 건설업계의 반발이 크다. 업계는 수백 개에 달하는 건설현장이 중단되고 경영책임자들은 ‘기업범죄자’로 전락하게 됐다고 호소한다. 특히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건설업계가 벼랑 끝으로 내몰리게 됐다며 거세게 반발하고 있다. 건단련은 이미 세계 최고수준의 형벌을 가하는 산업안전보건법이 있는데도 법이 제정됐다며 보완입법을 촉구했다.


헌법에 위배된다는 지적도 나왔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포괄위임금지, 과잉금지원칙 등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국회에 제출한 의견서를 통해서다. 경총은 경영책임자의 책임과 관리 범위를 벗어난 사고에 대해 무조건 처벌을 받게 하는 것은 형법상 책임주의 원칙에 반한다고 지적했다.


법조계 역시 산업현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고 처벌만 강화했다며 우려를 표명했다. ‘사업주, 최고경영자, 안전관리책임자, 현장관리자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준수해야 하는지 의무체계가 명확하지 않다’, ‘사업주에게 어떤 책임을 지울 것인지, 어떤 행위가 범죄인지 명확하게 해줘야 한다’, ‘산업안전 사망사고는 과실범임에도 고의범으로 보고 무거운 양형기준을 설정하는 것은 문제’라는 지적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문제는 법안을 입안한 국회의원들이 산업현장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데 있다. 건설현장만 해도 그렇다. 수백 개에 달하는 현장 상황을 최고경영자가 일일이 다 챙긴다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설사 사무실을 떠나 현장에 상주한다고 한들 불시에 발생하는 사고에 대응하기 어렵다. 더구나 건설 산업은 주로 위험이 상존하는 야외에서 이뤄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사고 발생의 유무를 그저 운에 맡기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보완입법이 따라야 한다. 부적절한 역량만 잔뜩 쌓은 여당과 무능하고 무력하기 짝이 없는 야당이 어우러져 만든 불합리한 법을 고쳐야 한다. 최고경영자에 대한 형벌을 없애든지 하한형의 형벌을 상한형으로 바꾸어야 한다. 면책조항도 있어야 한다. 안전비용에 대한 세금 혜택을 주는 독일 사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기업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사전적 예방조치 뿐이다. 기업 내부의 산업안전, 보건 관련 원칙과 절차를 수립하는 등 준법경영을 강화하는 것이다. 일 열심히 하고 범법자가 될 수는 없지 않은가.


2021년 1월 15일

전병수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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