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불 연기에 오염된 포도로 와인을 만든다면 어떤 맛이 날까. 똥 맛에 플라스틱 맛이 난다. 연기가 포도에 스며들면서 만들어진 탄소화합물 페놀 성분 때문이다. 페놀은 자연 상태의 포도에도 일정량이 존재하지만 그 정도가 심해지면 나쁜 맛을 낸다. 지난 9월 미국 캘리포니아, 오리건, 워싱턴 주를 대형 산불이 휩쓸 때 NBC 방송이 보도한 내용이다. 보도에 따르면 현지 와이너리와 포도밭 농장주들은 오염된 포도로 와인을 제조하면 상품화가 불가능하다고 우려했다.
 

건설사를 대상으로 한 지방자치단체들의 지역이기주의가 도를 넘고 있다. 지역의 건설사에게 지나치게 높은 수준으로 하도급을 주도록 강요한다. 건설사의 선택권이 제한되고 자유권이 박탈당하는 꼴이다. 품질은 뒷전이 된다. 지역 경제 활성화, 환경보호 등의 명분을 앞세워 지역 챙기기에 열중하고 있는 것이다. 


지자체들이 조례를 개정하는 등의 방법을 통해 최대 80%까지 지역 업체에게 하도급을 주도록 하고 있다. 적용 부문도 공공공사에서 민간공사까지 확대되고 있다. 건설사들의 불만 표출에 지자체들은 권장사항일 뿐 의무사항은 아니라고 발뺌한다. 자의든 타의든 하도급사 입장에서는 ‘지자체 찬스’를 쓸 수 있게 됐다.


지자체들이 왜 이런 무리수를 둘까. 이들은 지역 하도급사가 지역의 근로자를 고용해 일자리를 창출하고 지역의 건설산업을 활성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원도급사가 하도급 협력사를 모집할 때는 당연히 시공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먼저 본다. 건설시장의 자연스런 메커니즘이다. 이래야만 원활하게 공정을 진행하고 당초 설계했던 품질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또 원도급사와 하도급사 모두 적정한 이윤을 가져갈 수가 있다.


그런데 지자체 논리에 밀려 시공능력과 자금능력이 떨어지는 지역 업체를 선정했을 때 이런 결과가 나올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있는가. 원도급사는 지역의 하도급사에 비해 높은 경쟁력을 가진 다른 업체를 선정할 기회를 잃는 대가로 품질에 대한 고민을 안아야 한다. 뿐만 아니라 시공과정이나 시공 후 품질, 안전 등에 문제가 발생했을 경우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일자리 창출과 지역 건설산업 활성화 효과도 기대만큼 나오지 않는다. 지역 하도급사라 하더라도 현장 기술자의 경우 지역인 여부를 떠나 높은 수준의 전문기술을 지닌 사람을 쓴다. 잡부나 단순인력은 지역 사람을 쓰는 게 유리하다. 그래야만 시공의 품질과 효율을 높이고 공정을 맞춰나갈 수 있다.    


지역에서 생산되는 건설 기자재를 사용해 지역 경기를 살린다는 주장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다. 물론 레미콘처럼 제한된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을 쓸 수밖에 없는 품목도 있긴 하지만 극소수다. 건설현장에 사용하는 기자재를 해당 지역에서 생산되는 제품으로 충당할 수는 없다. 철근, 시멘트, 파일 등 기초자재와 도기, 페인트 등 마감자재는 원거리 운송으로 조달하고 있다. 대부분의 건설자재는 인천, 충남 당진, 충북 단양·제천·음성 등 특정지역에서 생산돼 현장으로 공급되고 있다. 시공사가 지급하는 기자재 대금이 자재회사 본사로 들어가는 구조다. 지역의 기자재 관련업계가 누리는 낙수효과는 거의 없다.


지역의 건설산업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지자체 주장에 시비를 걸 생각은 없다. 원도급사와 지역 하도급사가 상생해야 한다는 의견에도 공감한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실제로 공사 현장을 가보라. 지자체가 의도했던 대로 지역 출신의 근로자들이 넘쳐나고 지역의 건설경기에 활력이 도는지 눈으로 확인해보라.


사실상의 횡포요, 갑질이다. 건설사들은 안다. 지자체들이 왜 이러는지를. 선거를 통해 선출되는 지방 권력들이 표를 의식해서 무리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감히 대들 수가 없다. 그들이 가지고 있는 크고 작은 인허가·감독권의 힘이 얼마나 센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권력이 약간의 몽니만 부려도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안다. 


지자체는 탄소화합물이 가득 찬 지역이기주의의 산불을 꺼야 한다. 행여 준공한 시설물에 똥 냄새와 플라스틱 맛이 나지 않을까 두렵다.

 

2020년 11월12일

전병수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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