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한가위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여전히 기세를 꺾지 않고 있다. 코로나에 길이 막혀 고향으로 가야할 사람들이 귀성을 포기한다. 부모형제와는 스마트폰을 매개로 명절을 즐겨야 할 판이다. 첨단의 이기에 감사라도 표해야 할 지경이다.


코로나는 질병이다. 질병은 전쟁보다 무섭다. 질병에 의한 사망자가 전쟁에 의한 사망자보다 훨씬 많다. 14세기 유럽을 휩쓴 흑사병은 무려 2억여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1346~1352년 사이 유럽 인구의 3분의1 가량이 사라졌다. 일부 도시에서는 인구의 70%가 사망하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의 연합군 사망자 40만 명은 비교조차 되지 않는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사람을 가장 많이 죽게 한 것은 전쟁이 아니라 질병이었다.


질병은 고리가 약한 곳을 뚫고 들어온다. 사람이나 직업의 귀천을 가리지 않는다. 인류는 그동안 천연두, 콜레라, 홍콩독감, 스페인독감, 사스, 뎅기열 등 수많은 질병들로부터 시달림을 당했다. 일부는 사라지기도 했지만 다수가 토착화돼 인간들을 위협하고 있다. 신종 코로나가 유행하며 사람의 목숨을 거둬가고 있다. 24일 현재 코로나로 인한 세계 사망자 수는 98만여 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


브린 바너드는 ‘왜 독감은 전쟁보다 독할까’라는 책에서 “전염병들은 우리 사회에서 때로는 엄청나고 급격한 변화를 몰고 올수도 있고…. 전염병 때문에 생사의 문제뿐 아니라 승패, 부와 가난, 사상의 인기와 몰락이 가름될 수도 있다. 유행병이 없었다면 지구는 아주 다른 세상이 되었을 것이다”고 했다. 현재 우리 사회가 변화하고 있는 양상을 보면 공감이 간다. 얼마나 급격한 변화를 겪게 될지 두렵기도 하다.


코로나는 급기야 명절 풍경마저 바꾸고 있다. 한가위를 앞두고 벌초 대행업이 성행하고 사이버 차례상이 등장했다. 선물의 온라인 구매는 대세로 자리 잡았고 차례상의 간소화도 당연한 일이 됐다. 선물도 마스크, 체온계 등 의료용품과 건강식품으로 바뀌었다. 이쯤 되면 예기를 새로 써야 하지 않을까.


정부도 이번 명절만큼은 고향방문을 자제해 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직장인의 70% 가량이 귀성을 하지 않겠다고 하는 등 국민의 호응도도 높다. 시골의 늙은 어머니가 마스크를 쓴 채 도시의 아들과 며느리를 향해 고향집에 오지 말라고 부탁하는 장면을 TV에서 쉽게 접할 수 있다. 반가의 전통을 중시하는 종가의 며느리들조차도 자식들의 귀성을 만류한다. 오지마라 챌린지가 연출되고 있다.


한가위는 축제다. 1000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삼국사기에 따르면 서기 32년 신라 유리왕 때 여자들이 길쌈을 하여 지는 편이 술과 밥을 장만해 이긴 편에 사례하면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추며 즐겼다. 1819년 조선 순조 때 김매순이 쓴 열양세시기에는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는 말이 나온다. 한가위가 풍요 속에 이뤄지는 축제임을 증명해주는 기록들이다.


한가위는 일상에서 벗어난 일탈의 시간이다. 속이 아닌 성의 시간이다. 현대사회 들어 규모나 형식 등이 조금씩 바뀌긴 해도 축제라는 본질에는 변함이 없다. 축제에는 가족, 친지는 물론 조상까지 등장한다. 죽은 사람까지 참여하는 축제다. 차례 때 산자와 죽은 자는 음복을 통해 만나 하나가 된다. 또 부모형제와는 혼인, 제사, 상속 문제 등 집안의 대소사를 의논한다. 짧은 축제의 시간 속에서 소통하고, 화합하고, 나누었던 것이다.


건설업계와 유관기관들이 한가위를 앞두고 기업들을 지원하고 있다. 현대건설, 동부건설, 포스코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대형 건설업체들이 자재납품 등 거래대금을 조기에 지급하고 있다. 자금난에 허덕이는 중소 협력사들을 위한 배려다. 금융위원회와 중소벤처기업부 등도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위한 자금 대출과 보증에 나섰다.


올 한가위는 최악의 축제로 기록될 공산이 크다. 질병에다 여름 수마가 할퀴고 간 상처까지 돌봐야 하는 이중삼중의 어려움 속에서 축제를 지내야 한다. 건설사와 유관기관의 협력과 배려가 새삼 따뜻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상대를 존중할 줄 아는 이런 기업들의 가치가 높아지는 것이 단순한 덤만은 아닐 것이다.


 2020년 9월24일
 전병수 대기자

저작권자 © 국토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