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업은 ‘갑질’이 발생하기 쉬운 산업이다. 한국사회에서 갑질 없는 산업이 어디 있을까마는 건설업만큼 반칙이 끼어들 틈이 많은 산업도 찾아보기 힘들다. 프로세스 진행 과정에서 갑과 을의 관계가 형성되면서 이런저런 형태의 갑질이 등장한다. 발주처가 원도급사에, 원도급사가 하도급사에, 하도급사가 납품사에 관행 또는 합법을 가장한 형태로 갑질을 한다. 갑질의 행위가 하나의 고리를 이루게 된다.

 

계약서상으로는 수평적인 이들 갑과 을의 관계가 어떤 까닭으로 상하관계로 변질됐을까. 공정하지 않고, 자신에게 불리해도 갑의 지시나 계약요구 등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게 됐을까. 을은 비위를 맞추고, 갑은 군림하는 행태가 갑질이라는 이름의 병폐로 뿌리를 내리게 됐을까.

 

건설 산업은 갑질이 끼어들기 쉬운 구조로 돼있다. 우선 산업 자체가 수주산업이라는 특성을 가지고 있다. 많은 예산이 투입되고 다수의 업체가 모여 치열하게 경쟁을 벌인다. 수주라는 과실을 따는 업체는 한 곳에 불과하다. 이런 상황에서 우월적 지위를 가진 발주처가 부당하게 공사비를 삭감하거나 법에도 없는 규정을 내세워 규제를 하기도 한다. 고착화된 비즈니스 사회의 관행 속에 숨어있는 갑질 요인과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관계자들의 잘못된 의식이 맞물릴  가능성이 높다.

 

행정절차가 복잡한 것도 문제다. 인허가, 심의, 승인 등의 절차가 복잡하고 분야별 지도감독이나 시험검사 등이 다양하다. 따라서 이 과정에서 관련 업무 담당자나 지방자치단체장, 정치인, 민간 전문가 등의 입김이 작용할 수 있다. 이 경우 공사를 수주해야 하는 건설사는 난감한 입장에 빠지게 된다. 이들의 요구를 들어주자니 편법이나 위법을 동원해야 하고, 들어주지 않자니 다가올 후환이 두려운 것이다.

 

우리 건설 산업을 둘러싼 갑질의 역사는 꽤 뿌리가 깊다. 조선 건국 초기 왕궁 등 시설물의 건설과 유지관리를 담당했던 선공감사 박자청의 이야기다. 정도전이 조선의 한양을 설계했다면 시공은 박자청이 했다고 할 정도로 건설업무 수행에 뛰어난 능력을 보였다. 하지만 그는 성격이 각박했다. 도성을 쌓거나 문묘 등을 지을 때 공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부역 나온 백성들에게 심하게 매질을 가했다. 조정에 상소가 올라올 정도로 원성을 샀다. 건설현장의 감독관이 근로자들에게 갑질을 한 셈이다.

 

현대사회에 들어서는 산업의 각 분야에서 다양한 갑질이 발생하고 있다. 항공기 회항, 식품회사 회장의 운전기사 폭행 등 오너에 의한 갑질과 대리점에 상품을 강매하는 밀어내기 형 갑질, 일자리가 아쉬운 청년들을 대상으로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급여를 주면서 일을 시키는 열정페이형 등 갑질의 역사에 남을 사건들이 넘쳐난다.

 

건설 프로젝트의 진행에서 연결고리를 이루는 발주처-원도급사-하도급사-납품사 등의 관계 구조는 흥미롭다. 예를 들면 원도급사는 발주처에 대해서는 을이 되지만 하도급사에 대해서는 갑이 된다. 꼭지점을 제외한 연결사슬의 점들이 갑인 동시에 을이 되는 구조다. 갑질을 당하기도 하고 갑질을 할 수도 있는 입장인 것이다.

 

그런데 지난 15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가 그럴싸한 명분으로 제대로 갑질을 했다. 건축허가 신청 때 법에도 없는 우기대비 방재계획을 추가로 제출토록 요구한 것. 내년부터 일정규모 이상의 건축허가를 받으려면 계획을 제출하고, 착공 시 감리자는 이를 확인하도록 했다. 명분은 긴급 상황에 신속하게 대처하기 위해서란다. 건설업계는 진화된 발주처의 행정갑질이라며 철회를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지역 건설사들이 기흥구 발주공사를 포기할 각오를 하지 않는 한 끝까지 반발할 수 있을까.

 

갑질이 발생하는 것은 갑은 강자, 을은 약자로 치환되기 때문이다. 사회적으로는 자본주의 경제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내재된 봉건적인 가치관과 서구의 계약문화가 충돌하면서 나타난 병폐라고 볼 수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국민권익위원회, 검찰, 경찰 등 갑질을 감시감독하는 국가기관은 많다. 하지만 발주처 등 갑이 스스로 강자라는 생각을 거두지 않는 한 건설사 등 을과의 수평적이고 합리적인 관계를 기대하기 어렵다.

 

2020년 9월 18일
전병수 대기자

저작권자 © 국토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