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필적 고의라는 법률용어가 뉴스에 자주 등장하고 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세상을 등지기 전, 코로나19 감염으로 여러 명의 신도와 그 주변인을 숨지게 한 신천지교회 교주에 대해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죄를 적용해야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구급차와 접촉사고를 낸 택시기사가 사고처리부터 먼저 할 것을 주장하며 구급차를 막아선 사건에 대해서도 미필적 고의라는 용어가 등장했다.


이런 상황에 왜 미필적 고의라는 어려운 용어가 등장했을까. 형법 이론에서 가장 난해한 부분이 ‘미필적 고의’ 이론이다. ‘조건부 고의’라고도 불리는 미필적 고의는 개념 자체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어떤 때는 적용되고 어떤 때는 적용되지 않기 때문에 더욱 어렵다.


형법은 원칙적으로 고의범만 처벌하고 과실범은 처벌하지 않는다. 다만, 사람의 생명과 신체에 관한 보호는 특히 중요한 개인적 법익(法益)이므로 예외적으로 과실범도 처벌한다. 똑같이 사망에 이르게 한 사건일지라도 미필적 고의가 적용되면 살인죄가 성립되고, 적용되지 않으면 상대적으로 가벼운 과실치사죄로 처벌받을 뿐이다.


형법에서 과실이라 함은 ‘결과를 인식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부주의로 인식하지 못하였거나(주의의무 위반)’, 결과는 인식했으나 부주의로 ‘결과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확신’을 갖고 한 행위(인식 있는 과실)를 말한다.
여기까지 이해하고 습득한 독자들이 어떤 사망 사건을 보고, 해당 사건이 ‘인식 있는 과실’에 의한 사망인지,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사망인지를 구별할 수 있을까? 독자들은 일단 개념 정립이 안 돼 구별하지 못할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개념정립이 확실히 돼 있는 전문 법조인도 명확하게 “과실 또는 고의”라고 명쾌히 단정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미필적 고의를 설명할 때, ‘티칭(Teaching)’에 능한 법률 전문가는 ‘고층 아파트의 화분 투척 사건’을 예로 든다.
‘고층 아파트에 사는 게으른 주부가 폐화분을 버리려 하는데, 무거운 화분을 들고 내려가자니 힘들다. 주부는 꾀를 내 뒤쪽 베란다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기로 했다. 화분은 박살날 것이고, 흙은 골고루 흩어질 것이니 이제 내려가서 파편만 주워서 버리면 된다. 이때 잠깐 머릿속에 스치는 생각이 “혹 누가 지나가다 맞으면 죽을 텐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게으른 주부는 “내 평생 이곳으로 사람 지나다니는 꼴 못 봤어. 절대로 사람이 맞을 리 없어”라며 떨어뜨린 것과, “내 평생 이곳으로 사람 지나다니는 꼴 못 봤어. 절대로 사람이 맞을 리 없어. 재수 없이 지나가다 맞아 죽으면 그건 자기 팔자지 뭐”라며 떨어뜨린 경우’는 다르게 적용된다.


전자는 인식 있는 과실에 불과하나, 후자는 미필적 고의로 적용된다. 전자의 생각으로 화분을 밀었다 사람이 사망하면 과실치사 혐의가 적용되고, 후자의 생각까지 확장하고도 화분을 밀었다면 살인 혐의가 적용되는 것이다.


문제는 아무리 게으른 주부라 할지라도 법정에 서서 자기의 내심(內心)을 그대로 고백하지는 않는다. 이미 변호사의 조력을 받았기에 “여기까지 밖에 생각지 못했다”고 주장한다. 이런 상황에서 검사와 변호사의 ‘힘겨루기’가 시작된다. 입증책임은 주장하는 자의 몫이다. 검사는 여러 가지 정황을 들어 미필적 고의였음을 입증하려 하고, 변호사는 단순 과실에 불과했다고 방어한다. 법리논쟁을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어떤 사람의 ‘내심의 의사(內心의 意思)’ 바깥에서 ‘힘겨루기’를 할 뿐이다. 판사는 힘겨루기에서 이긴 쪽의 손을 들어준다. 
   

이번 구급차 사건이나, 코로나19로 인한 사망사건 역시 구성요건과 인과관계에 이어 “죽어도 나랑은 상관없는 일”이라는 내심의 의사가 있었다고 입증하고 방어하는 쌍방 간의 법리논쟁과 힘겨루기의 여지가 남아 있다.

 

2020년 7월 30일

조관규 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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