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배로부터 전화가 왔다. 아내에게 문제가 생겼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이웃 간 사소한 다툼이 원인이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문제다보니 감정적인 문제가 되었고, 급기야 몸싸움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서 목소리가 높아진 것은 당연하고.

 

사과하고 끝냈으면 됐을 일이 형사고소로 이어졌다. 당한 쪽도 가만히 있을 리가 없다. 맞고소. 형사입건이 되면 더 이상 통제가 되지 않는다. 내 마음대로 끝낼 수 없다는 것이다. 결국 쌍방 모두 폭행과 명예훼손으로 벌금형을 받았다. 벌금 이상의 변호사비용이 들었음은 말하나 마나다. 그러나, 돈도 돈이지만, 두 사람은 모두 사람을 잃었다. 더 이상 서로에게 이웃이 될 수 없게 된 것이다.

 

바야흐로 법률만능시대다. 20년 전, 10년 전 그리고 지난해보다도 확실히 소송하고 고소하는 일이 많아졌다는 느낌이다. 그런데 법은 일반적이고 추상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 구체적인 사건에 반드시 딱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는 것이다. 70%, 잘 맞아야 80% 정도다. 그나마, 팔이 안으로 굽는다고, 법으로 생활하고 법 밖에 모르는 변호사니까 이렇게 생각하는 것일 것이다. 일반인들의 경우에는 법이 부당하다고 느끼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을 것 같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법대로 하는 것이 사회통념상 부당하다고 느껴지는 경우도 있었다.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갯짓을 한다고, 법이라고 하는 것은 요즘같이 급변하는 사회를 따라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 위법하지만 정당한 판결을 내리는 판사를 본 적이 있다. 그런 ‘판사님’을 나는 존경한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한다. “그렇지, 저 정도 돼야 판사지. 법대로만 하면 판사가 무슨 소용이 있나?” 판사는 끝까지 없어지지 않을 것이다. 인공지능(AI)은 절대로 그런 판결을 할 수 없을 테니까.

 

“법은 정의가 아니다. 법은 분쟁해결수단 중 하나일 뿐이다”(마이클 크라이튼, 공포의 제국). 법은 종국적인 분쟁해결수단이기는 하지만, 대부분 최선의 수단은 아니다. 어떨 땐, 특히 가족과 같이 가까운 사이일 땐, 최악의 분쟁해결수단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정치가 있는 것이다. 정치가 법 위에 있어야 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법은 위와 같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히려 정치가 자기 역할을 못하고 법에만 기대려 하니 우리 사회가 더 빡빡해지고 답답해지는 것 같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모든 것을 형사처벌로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경향은 처벌을 강화하는 쪽으로 제도를 몰고 간다. 그러나 이는 소 잡는 칼로 닭을 잡는 격이다. 당연히 득보다 실이 많다.

 

무엇보다도 우리 헌법의 대원칙 중 하나인 죄형법정주의에도 어긋나는 것이다(헌법 제12조 제1항, 제13조 제1항). 그리고 죄형법정주의의 구체적인 내용 중 하나가 적정성의 원칙이다. 즉, 죄와 그 죄의 결과에 대한 책임인 형벌은 균형을 이루어 적정해야 하는 것이다. 헌법재판소도 이러한 적정성의 원칙에 위배되면, 그 법률은 위헌이라고 보았다. 예컨대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과실치사 후 구호행위를 하지 않고 도주 혹은 유기했을 때 살인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는데, 이에 대하여 헌법재판소는 “도주·유기라는 추가 구성요건이 있긴 하나 과실치사를 살인보다 무겁게 처벌하는 것은 적정성의 원칙에 반한다”고 본 것이다.

 

한편 건설기술진흥법은 처벌조항들을 살펴보면, 다리, 터널, 철도 등의 시설물의 구조에서 주요 부분에 중대한 손괴를 일으켜 사람을 다치거나 죽음에 이르게 한 건설기술용역사업자에게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에 처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제85조 제1항). 그런데 형법상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나 중과실치사상죄는 5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규정하고 있다. 그렇다면 건설기술진흥법 규정은 과하다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기 또는 3년 이상의 징역’은 음주운전으로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했을 때 적용되는 형벌인 것이다. 불합리한 법률은 사문화되기 마련이다.

 

새로운 21대 국회가 열린다. 새 국회에서는 정치가 자신의 역할을 했으면 한다. 그리고 그 일 중 하나가 바로 불합리한 법률을 정비하는 것이다.

 

2020년 5월 29일

법무법인 정진 정혁진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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