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의 취업자는 전체의 7.4%를 차지하고 있고, 단일산업으로는 가장 많은 고용이 이루어지고 있는 대표적인 일자리 산업이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나라는 이미 고령화 사회(Aging Society)를 넘어 고령사회(Aged Society)에 진입했고 건설산업 기능인력의 고령화 문제는 농림수산업을 제외하면 가장 심각한 수준이다. 3D(Difficult, Dirty, Dangerous)로 치부돼 청년층이 진입을 기피한 결과고, 외국인근로자가 없으면 현장이 돌아가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나온 지도 이미 오래됐다. 이대로는 지속가능한 구조가 아닌 것이다.


그런데 기능인력 고령화와 생산성 저하 등 문제는 우리나라 건설산업만 겪는 문제가 아니라 선진국들도 겪는 보편적인 문제이고 이미 대안은 제시돼 있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y Forum), 맥킨지(McKinsey), 보스턴 컨설팅 그룹(Boston Consulting Group) 등은 2016~2017년 비슷한 시기에 일련의 보고서를 통해 한결같이 ‘4차 산업혁명시대의 디지털 건설’이 건설산업의 변화 방향이라 진단한 바 있고, 우리나라 정부도 ‘제6차 건설기술진흥 기본계획(2017)’, ‘건설산업 혁신방안(2018)’, ‘스마트건설기술 로드맵(2018)’ 등을 통해 스마트건설에 대한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코로나19를 극복하고 경제활성화를 앞당기기 위해 최근 정부가 제시한 ‘한국판 뉴딜(2020)’에도 어김없이 디지털이 키워드로 등장한다. 이와 같이 ‘디지털 건설’ 또는 ‘스마트 건설’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건설산업 혁신의 방향임은 분명해보인다.


한편 수재들의 모임인 멘사(Mensa)의 2대 회장을 역임했던 미래학자이자 건설인(건축가)이기도 했던 버크민스터 풀러(Buckminster Fuller)는 1982년 지식배가곡선(Knowledge Doubling Curve)의 개념을 제시한 바 있다. 19세기까지 인류의 지식 총량이 대략 100년 마다 두 배가 됐다면, 2차 세계대전이 끝날 무렵인 1945년경에는 25년마다 두 배가 됐고 1982년 시점에는 대략 12~13개월 마다 두 배가 되면서 점점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최근에는 IBM이 2020년이면 지식의 총량이 11~12시간마다 두 배가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그런데 맥킨지는 2017년 건설부문의 디지털 전환 수준이 모든 산업 중 꼴찌고 생산성 증가율도 마찬가지라고 진단한 바 있다. 맥킨지의 진단이 맞다면 지식배가곡선은 건설 분야에서는 아직 유효하지 않아 보이며, 그렇다면 건설산업 혁신에 있어서 방향성보다 속도가 문제라 할 수 있다.


ICBM(IoT, Cloud, Bigdata, Mobile), DNA(Digital, Network, AI) 같은 새로운 기술과의 융·복합 시대에 건설산업도 예외가 아니어서 전통적인 건설·엔지니어링 기술과 ICBM, DNA의 융·복합이라는 방향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문제는 맞춤형 기술을 확보할 수 있는 창의력과 속도이다.


디스플레이 기술이 있고 카메라 기술이 있고 메모리 기술이 있고 통신기술이 있다고 누구나 상품성 있는 스마트 폰을 만들어 내지는 못한다. 스마트 폰이라는 혁신상품과 시장을 만들어 내는 능력은 보다 편리한 삶의 모습에 대한 상상력과 이를 구현하기 위해 필요한 기존 기술에 대한 이해와 창의적 융·복합 및 최적화 역량에 다름 아니라는 점을 이미 삼성과 애플이 실증하고 있다. 현재 이미지 센서 분야의 세계 최고 기술 보유 기업이고 과거 TV와 노트북 시장의 강자이기도 했던 소니가 디지털 카메라 시장에서 캐논과 니콘의 아성을 허물고 있는 반면 스마트 폰 시장에서는 삼성과 애플의 적수가 되지 못하는 것도 해당 분야에 특화된 융·복합 및 혁신의 속도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초기 스마트 폰 시장과 마찬가지로 전통적 건설·엔지니어링 기술과 첨단기술이 융합된 미래 건설기술에 대해 수많은 기업과 연구자들이 다양한 비전을 제시하고 있지만, 특정 건설·엔지니어링 프로젝트에 최적화된 실용성 있는 융·복합 기술은 여전히 개척 대상이다. 예를 들어 드론이나 UGV(Unmaned Ground Viechel) 같은 로봇들이 건설현장의 이미지와 스캐닝 데이터를 수집하면, 인공지능이 작업자나 장비의 행동패턴과 구조물 상태·품질을 식별하고, BIM(Building Information Model)과 가상·증강현실기술을 기반으로 공정과 생산성을 분석하고 최적화된 작업계획을 생성해 건설 프로젝트 관계자들이 공유하고 자동화 장비나 로봇들이 시공하는 시나리오가 제시된 지는 오래됐지만 아직까지 완전히 상용화 되어 있지는 않다.


여전히 적정한 대가 지급이 건설·엔지니어링 업계의 최대 현안 중 하나이고 안전사고가 반복되는 현실과 너무 먼 이야기라 치부할 수도 있겠지만, 현실 문제에 매몰돼서는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과 생태계를 선진국이나 타 산업에 선점당할 수밖에 없는 속도로 세상이 움직이고 있다.


우리나라 건설산업이 맥킨지가 디지털 전환 속도가 특히 느리다고 진단한 건설산업 부문에서 혁신을 선도하고 선진국들의 사다리 걷어차기(Kicking Away the Ladder)를 피해 국부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산·학·연·관이 ‘디지털 건설’ 또는 ‘스마트 건설’이라는 방향을 향해 효과적으로 협업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과 속도가 중요한 시점이다. 아직은 기회가 있지만 좌고우면할 여유는 없다.


2020년 5월 22일
한국건설기술연구원 건설정책연구소장 강태경

저작권자 © 국토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