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기업들의 돈 가뭄을 해소하기 위해 한국은행이 사상 처음으로 ‘무제한 돈 풀기’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1998년 외환위기나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도 내놓지 않았던 조치로, 발권력을 동원해 금융기관에 한도 없이 유동성을 공급하겠다는 뜻이다. 국책은행들도 자금난을 겪고 있는 두산중공업에 1조 원을 긴급 투입키로 했다.


한은은 4월부터 3개월 동안 매주 1회 한도를 정해두지 않고 금융기관의 수요에 맞춰 환매조건부채권(RP)을 전부를 매입할 계획이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발행하는 채권으로, RP를 매입한다는 건 금융기관에 현금을 풀어준다는 얘기다.


더 많은 금융기관이, 더 쉽게 돈을 끌어갈 수 있도록 RP 거래에 참여할 수 있는 금융기관과 대상 증권도 대폭 늘렸다. 윤면식 한은 부총재는 “시장의 유동성 수요 전액을 제한 없이 공급하기로 결정한 조치”라며 “사실상의 양적완화 조치로 봐도 무방하다”고 밝혔다.


한은이 전례 없는 한국판 양적완화 카드를 꺼낸 것은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소상공인은 물론 중견·대기업들의 돈줄마저 막히고 있기 때문이다.


한은이 3개월 ‘무제한 돈 풀기’에 나선 것은 시의적절하다. 최근 회사채 등 채권시장이 얼어붙으면서 기업들의 자금 조달에 어려움 켜졌다. 기업 유동성이 막히자 비상조치를 내놓은 것이다. 미국 등 주요국이 일제히 양적완화에 나선 것에 한은의 양적완화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볼 수 있다.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가 일단 긍정적 효과를 낼 것으로 보고 있다. 금융사 자금이 넉넉해지면 기업들의 자금 상황도 좋아지기 때문이다. 특히 극심한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의 유동성악화를 해소해 도산은 막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기업들의 ‘돈맥 경화’는 크게 개선될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돈을 엄청나게 풀었는데도 실물·금융 분야가 살아나지 않는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풀린 돈이 유동성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으로 정확히 흘러 들어가도록 해야 한다.  시중에 풀린 돈이 투기자본이 되지 않도록 꼼꼼한 모니터링을 해야 한다.


금융사들도 힘을 보태야 한다. 대출심사 기간을 최대한 줄여 하루가 급한 기업들에게 돈이 신속하게 수혈되도록 하는 등 양적완화 효과가 극대화 될 방안을 찾아야 한다. 이번 양적완화조치가 경제회복을 앞당기는 기폭제 역할을 하길 바란다.

 

2020년 3월 27일
한양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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