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경제신문이 창간 10주년을 맞았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했듯, 많은 것이 변했다. 특히 언론이 많이 변질되고 위상 또한 추락해 10주년 잔칫날이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언론의 위상이 추락하고 변질하는 동안 나 역시 이 비난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를 돌아본다. 참 언론의 길을 지키고자 했을 뿐, 적극적으로 저지하지 못한 과오도 있다. 이 또한 기자로서의 직무유기일 것이다. 반성의 기회로 삼고자 한다. 


조직에 아무리 뛰어난 기자들이 많아도 신문의 품질은 데스크의 수준을 뛰어넘을 수 없다는 말이 있다. 데스크의 시각과 밸류(Value)에 대한 판단, 그리고 대안제시 역량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신문인의 격언이다. 그러나 요즘처럼 데스크의 시각이 천박하고, 한쪽으로 치우쳐 있었던 적은 없었던 것 같다. 그냥 휘갈겨 놓으면 기사인 줄 알고, 또한 엿가락 늘이듯 늘여 놓으면 문장인 줄 아는 데스크들이 많다. 심지어 데스크라는 사람의 입에서 “기자가 무슨 대안을 제시하느냐”고 반문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사정이 이러하니 언론인이라는 자가 ‘갈라진 편’의 한 쪽에 서서 자기편의 주구(走狗) 노릇을 하고 있다. 언제부턴가 언론인들마저 ‘네 편 내 편’으로 갈라진 세상이 돼버렸다. 적어도 조국과 민족의 장래를 생각하는 지성이 모여 언론이라는 공동체를 구성하지 않았던가. 언론인의 그 자긍심 높았던 기상은 어디로 가고, 요즘은 특정 정당의 기관지 수준으로 전락하고 있다. 한낱 장사치처럼 회사의 이익을 위해, 심지어 정도(正道)에 벗어난 지도 모른 채 마구 휘갈기고 있다.  
 

최근의 일이다. 라디오에서 “MB 참말하는 소리하고 있네”라는 멘트가 흘러나왔다. 주고받는 대화의 분위기상 분명 “허튼소리하고 있네”라는 뜻이었다. 아무리 전직 대통령이 죽을죄를 지었다하더라도 대한민국 정규방송에서 나올 멘트는 아니지 않은가. 또 최근의 일이다. ‘드루킹 수사’에 대한 TV뉴스였다. 야당의원이 경찰청장에 대해 초동수사의 부실을 질타하는 내용이었다. 방송은 뉴스를 마치면서, 경찰청장에게 ‘수사하랴 야당의원에게 질타 받으랴 힘드시죠’라는 응원의 자막을 내보냈다.
언론은 가치중립을 지켜야 한다. 그럼에도 약자의 편을 들거나 다소 약한 야당의 편을 드는 것 정도는 인지상정으로 넘어갔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언론이 특정 정당의 대변지 행세를 하고 있다. 명색 종합일간지라는 신문이, 한국기자협회에 정회원으로 등록된 기자를 가진 언론사가 편 가르기에 앞장서고 있다. 초보 기자들이 멋모르고 편향된 기사를 써도 ‘가치중립’을 가르쳐주고 바로잡아줘야 할 데스크들이 요즘은 오히려 부추기고 있다. 타락한 언론의 편 가르기에 국민분열의 골이 깊어지고 있다. 


‘올챙이 기자’ 시절이 생각난다. 선거유세 현장을 스케치하러 갔는데, 한 후보의 공약만 현실적이었다. 다른 후보의 공약은 한 줄로 처리하고 그 후보의 공약만 상세히 적어 제출했다. 노발대발한 데스크가 원고를 찢어버리면서 고함을 질렀다. 각 후보의 공약을 100자씩, 원고분량마저 공평하게 쓰라는 지시였다. 그분은 아직도 나의 우상이자 큰 스승으로 남아 있다.
요즘은 왜 이런 스승, 이런 데스크가 없는가. 기자도 자연인이기에 끌리는 사람도, 지지하는 정당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인인 이상 ‘잘하면 잘했다, 못하면 못했다’고 써야 한다. ‘내 편’ 아니라도 잘하면 칭찬해주고, 내 편이라도 못하면 비판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토경제신문이 올해로 창간 10주년을 맞이했다. 그 동안 언론환경도 강산만큼이나 많이 변했다. 작은 업적이라면 가치중립의 시각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 부족할지는 모르지만 ‘참 언론’의 길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무리 짓기’는 내게 결코 용납되지 않는다. 비록 혼자 남을지라도 언론의 정도를 고수하기 위해 깨어 있을 것이다. 많지는 않지만, 그런 노력의 국토경제신문을 알아주고 지지해주고 응원해주는 독자 여러분이 있어 결코 외롭지만은 않다. 창간 10주년을 맞아 국토경제신문을 응원하는 독자 여러분께 다시 한 번 심심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2018년 5월 25일
국토경제신문 발행인 조관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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