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토경제신문 조관규 기자] “아파트를 지어 팔겠다고 택지를 샀는데, 택지에서 문화재가 나오면 어떻게 될까?”
대형 건설기업이라면 몰라도 웬만한 중소건설기업은 부도를 내고 쓰러진다.
터파기 공사에 이어 건립공사를 조속히 진행해 나가야 하는데, 문화재를 만나면 건설기업 입장에서는 지뢰를 밟은 셈이 된다.  
문화재청에 신고를 해야 하며, 이때부터는 문화재 발굴단이 투입돼 붓으로 흙을 쓸어내는 정밀작업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얼른 지어서 조속히 팔아야, 현금 유동성이 확보되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문화재가 발굴될 때까지 3~5년간 ‘지뢰밭’에 자금이 묶이게 되는 것이다.


재건축 재개발 부지에서도 같은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재개발 부지에 문화재가 있을 리 만무하지만 허가권자가 특정건물에 대해 ‘보존하라’고 명령하면 이때부터 기업은 당국으로부터 폭탄을 맞은 형국이 된다.


실제로 이 같은 현상이 우리 주변에서 발생하고 있다.
부영주택(대표이사 이중근)이 호텔을 짓기 위해 사들인 서울 중구 소공로 112-10번지 일대 6562㎡ 땅과 7채의 건물에 대해 서울시가 일부 건물의 보존명령을 내렸다.


이 땅과 건물은 부영주택이 지난 2012년 삼환기업으로부터 1721억원에 사들였다.
지상 27층, 850실 규모의 호텔을 짓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지난해 10월 부영의 이 같은 계획을 담은 ‘소공동 특별계획구역 세부개발계획 결정(안)’을 통과시켰다.
관광숙박업(관광호텔) 사업계획도 조건부 승인했다.

서울시 건축심의위원회의 심의와 건축허가만 남아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서울시는 총 7개의 건물 중 5채를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하고, ‘건물을 최대한 보존하라’는 권고를 내렸다.
시는 지난해 4대문 안의 210개 건축물을 근현대 건축자산으로 지정했는데, 부영주택의 사업부지가 여기에 포함된 것이다.
문화재청에 등록된 문화재도 아니지만 사업자는 인·허가권을 갖고 있는 서울시의 가이드라인을 따를 수밖에 없는 처지다.


사업을 위해 임차인들을 모두 내보냈으나 당초의 호텔건립 계획과 달라지면서 이곳이 방치되고 있다.
사업이 진행되지 못하면 도심의 흉물로 남을 가능성이 크다.
해당 건축물은 정밀 안전진단 결과 사용제한 등급이 D등급을 받은 상태다.
실제로 이곳 건물은 1930년대 지어진 노후 건물들로 에어컨 실외기관들과 수도관이 어지럽게 노출돼 있다.
건물 입구엔 지난해 12월 22일자 영업을 종료했다는 안내문과 함께 외벽엔 오래된 광고판이 찢겨진 채 매달려 있어 위태롭기까지 하다.
또 주차장으로 사용하던 건물 뒤편은 곳곳이 파헤쳐진 채로 방치돼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태가 지속될 경우 도심의 흉물은 그대로 방치되는 동시에 사업자인 부영주택은 유동성이 묶이게 되는 아픔을 겪게 된다.
윈-윈이 아니라 서로에게 상처만 남는 최악의 시나리오로 치닫게 된다.


시와 부영은 협의에 나섰지만 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시는 기존 근현대건축물의 격자형 입면디자인 차용 등 흔적을 남길 것과 보행로 확대, 6층 이상 고층부는 분리해 개방감을 확보하라고 주문했다.
보행로를 넓히면서 건물을 보존하는 동시에 고층부분은 따로 떼어내라는 권고다.
건물을 공중으로 띄워 보행로를 만드는 것도 논의가 됐지만 D등급 건물인 만큼 안전성 문제가 걸림돌이었다.


이 때문에 오래된 건축물을 무조건 보존하도록 규제하는 것이 옳으냐 하는 반론이 점점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전봉희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는 “건축 기술상 건물을 띄워서 보존하는 게 가능하지만 그런 사례는 본 적이 없다”면서 “해당 건물들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물론 반대의견도 있다.
이경훈 국민대 건축학과 교수는 “논란의 핵심은 소공로가 갖고 있는 경관을 어떻게 보존할지의 문제”라며 “시와 사업자는 ‘어떤 방식으로의 보존이 좋은 지’에 대한 접점을 찾아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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