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부터 제기돼 온 주택공급과잉 논란의 열기가 여전히 뜨겁다. 부동산 관련 국책 연구원과 민간 전문가들은 주택시장의 각종 지표들을 근거로 공급과잉 논란에 불을 지피고 있다. 정부와 건설업계는 공급과잉이 아니라며 진화에 나섰지만 불길을 다잡지는 못했다.
첨예하게 대립하는 두 주장의 발원지는 모두 ‘지난해 평균 이상의 공급이 이뤄졌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주택이 과다 공급된 것은 맞지만 공급과잉으로 진단하기엔 이르다”는 한 주택 관련 연구기관의 분석이 주택공급과잉 논란의 현실을 대변해주고 있다.


◇ 주택시장 이상 징후 보인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주택인허가 실적은 76만5328가구로 집계됐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48.5% 증가한 수치다. 특히 관련 통계를 처음 작성한 1977년 이후 역대 최대 규모라는 점이 눈길을 끈다. 주택공급이 급격하게 늘면서 미분양도 쌓이고 있다. 지난해 11월 말 기준 미분양주택은 전월 대비 54.3% 늘어난 4만9724가구로 나타났다. 미분양주택은 12월 말 6만1512가구까지 늘어나며 역대 최대치를 경신했다.
주택공급량이 과잉상태라면 당연히 주택 가격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실제로 지난해까지 꺾일 줄 몰랐던 아파트 매매가격은 최근 하락세를 나타내고 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지수는 4주 연속 보합세를 이어갔다. 이는 가격 상승에 대한 기대심리 저하로 인해 매물은 증가하는 반면 거래량이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주택공급과잉을 주장하는 전문가들은 이 같은 지표들이 주택시장의 이상 징후를 나타내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 송인호 거시경제연구부 연구위원은 “지난해 아파트 분양 물량은 중장기(2013~2022년) 주택공급계획에서 추정한 주택 수요를 큰 폭으로 초과하는 수준”이라며 “이는 가구 수 증가와 주택 멸실 수를 고려한 우리 경제의 기초적인 주택 수요와 비교해도 이례적으로 많은 수준”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지난해 아파트 분양 물량은 53만 가구로 주택공급계획상 연평균 공급계획 물량 27만 가구를 크게 웃돌고 있다.
송 연구위원은 이 같은 이유로 오는 2018년 준공 후 미분양이 2만 가구를 넘어설 것으로 보여 이에 대한 잠재적 위험에 대비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건설산업연구원 허윤경 연구위원 역시 “올해 주택인허가 물량은 시장 호황기였던 2007년보다 많은 수준으로 아파트뿐 아니라 비아파트 공급까지 증가하면서 공급 급증 현상이 심화됐다”며 “만약 올해까지 공급 증가가 지속될 경우 하반기 이후에는 미분양, 미입주 등 재고적체현상이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금융 및 부동산 업계의 시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이휘정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공급물량이 자연적으로 소화 가능한 수준을 넘어섰다는 징후들이 최근 가격(하락)이나 미분양 물량(증가) 등 지표에서 확연히 나타나고 있다”면서 “올해 상반기까지 분양물량이 많은 점 등으로 볼 때 2017년 말부터 1∼2년간은 공급과잉 상태가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부동산114 함영진 리서치센터장은 “과잉 논란은 시장에서 수용이 가능하냐의 문제인데 지난해 아파트 53만 가구가 분양되고 올해 역시 33만 가구가 분양 대기 중인 상황”이라며 “지역별 편차는 있지만 미분양이 단기간에 급증했고 지난해 다세대·연립주택의 인허가가 늘어난 점 등을 주의 깊게 봐야 한다”고 꼬집었다.


◇ 공급과잉 시기상조… 수용 가능한 수준
이에 반해 정부당국과 산하 기관들은 주택공급과잉 주장을 일축하고 나섰다.
국토부 강호인 장관은 “지난해 주택 인허가가 급증해 공급과잉이 우려된 것은 사실이지만 지금 당장 걱정할 단계는 아니다”라고 선을 그었다.
여기에 서승환 전 국토부 장관은 “주택공급은 인허가 물량이 아닌 준공 물량으로 보는 것이 적절하다”고 전제하며 “지난해 인허가 물량은 급격히 늘었지만 준공 물량은 그에 비해 소폭 늘어나는 데 그친 만큼 우려할 만한 초과공급은 없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는 이어 “지난해 주택시장에는 오히려 약한 정도의 초과수요가 존재했다고 볼 수 있어 올해 인허가 물량은 지난해보다 상당히 적을 가능성이 크다”고 덧붙였다.
국토부 산하기관인 한국감정원과 국토연구원도 주택공급과잉 주장에 반론을 제기했다.
한국감정원 채미옥 부동산연구원장은 “지난해 주택가격이 단기 급상승한 데 따른 부담감과 일시적인 공급과잉 논란, 가계부채 관리방안에 따른 가격하락 우려가 있지만 베이비부머 자녀들인 에코세대(1979~1992년 출생)의 주택시장 진입과 1인 가구 증가, 전세 수요의 매매 전환 등 수요가 충분해 과대공급이 과잉공급으로 이어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국토연구원 박천규 부동산시장연구센터장은 “지난해 같은 경우 주택시장이 회복세를 보인 데다 금리인상이 예견되면서 자금조달이 쉬울 때 물량을 빨리 공급하려는 건설사들이 많았다”면서 “따라서 금리인상 신호가 없는 올해와 내년에는 빠르게 공급을 줄일 수 있을 것으로 예견되는 만큼 주택공급량이 조기에 장기평균으로 수렴할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했다.
대형건설사들로 구성된 주택협회도 공급과잉 우려에 대해 기우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공급과잉 문제는 지난해와 같은 일시적 공급확대가 최소한 2~3년간 지속됐을 때 발생할 수 있다는 것이 주택협회 측의 설명이다.
특히 주택협회는 지난해 주택공급 물량 증가가 주택구매 수요 증가에 기인한 것으로 시장에서 충분히 소화 가능한 수준이라고 강조했다.


◇ 공급과잉 우려가 현실로
정부는 주택공급과잉 논란에 대해 우려할 수준이 아니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직·간접적으로 지나친 공급을 규제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10월 금융감독원은 급증하고 있는 아파트 중도금 대출 등 집단대출에 대한 건전성 관리에 착수했다. 국토부 산하 주택도시보증공사(HUG)도 미분양 우려가 큰 지역에 대해 기존 지사 차원의 심사에 본사의 중복 심사를 거치도록 분양보증심사를 강화한 바 있다.
결국 주택공급이 늘긴 했지만 크게 과잉이라는 단어를 쓸 정도로 우려할 수준은 아니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향후 공급과잉에 대비한 리스크 관리는 필요하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는 셈이다.
국회입법조사처 장경석 입법조사관 역시 지난해처럼 주택이 공급될 경우 우리나라 주택시장의 공급과잉이 현실화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장 입법조사관은 주택공급과잉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주택공급과 택지공급을 유기적으로 연계해 지역별 신규 주택공급 상황을 점검할 수 있는 체계를 갖춰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인·허가를 받은 주택이 얼마나 착공되고 준공되는지, 그리고 미착공 또는 미준공 사유 등에 대한 구체적인 정보가 제공돼야 한다는 것이 장 입법조사관의 설명이다.
장 입법조사관은 또 주택시장의 경우 건설이나 각종 자재사업 등 실물사업뿐만 아니라 주택금융, 이자율·가계소득, 고용 등 거시경제정책 변수를 포함하고 있는 만큼 신중한 정책설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민간사업자에 대해서는 주택시장이 좋다고 무턱대고 물량을 쏟아낼 경우 정부의 공급규제 정책을 초래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장 입법조사관은 “모처럼 살아난 부동산 시장에 대한 과도한 규제는 오히려 시장을 죽일 수 있는 만큼 건설·시행사들이 자체 조정 등을 통해 공급을 조절할 필요가 있다”며 “올해 주택시장은 공급 속도 조절을 얼마나 잘하느냐에 달려 있다”고 말했다.
주택공급과잉 논란에 있어 수요자의 입장도 고려돼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단국대학교 조명래 도시지역계획학과 교수는 “주택공급과잉이 아니라는 국책 연구기관의 주장은 수요자 보다는 철저히 공급자 관점에서 바라본 것”이라며 “지난해 분양물량이 폭증한 원인은 분양가상한제 폐지, 청약 1순위 완화, 전매제한 완화 등 정부가 파격적인 규제완화정책으로 수요를 부추겼기 때문”이라고 꼬집었다.
그는 이어 “반면 정부의 인위적인 부동산 시장 부양책이 거둬질 경우 수요는 급격히 위축될 수밖에 없다”며 “공급자 관점에서 시장흐름을 자의적으로 읽고 과잉공급을 방치한다면 결국 정부정책을 믿고 집을 산 소비자들이 피해를 볼 것”이라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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