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7주년을 맞아 건설산업을 되돌아 보게 된다.

그동안 국내 건설산업은 국가 경제발전을 이끌어온 견인차 역할을 수행했다.
건설산업은 지난 1950년 6·25 전쟁 이후 폐허가 된 산업기반 시설 재정비 등 전후 복구 사업을 중심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다 1960년대 국가경제개발계획이 수립되고 실행에 옮겨짐에 따라 전력, 수송, 용수 등 사회간접시설의 건설을 담당하면서 양적, 질적으로 성장했다.
섬진강 하천 개선사업, 울산 정유공장, 부산화력발전소, 섬진강 다목적댐, 경인 및 경부고속도로 등을 통해 건설산업은 국가 경제가 고도성장할 수 기반을 마련하는 데 일조했다.


1970년대는 건설산업이 국가 기간산업으로 성장한 시기다.
특히 이 시기에는 중동을 중심으로 해외에서 대형 건설공사를 잇따라 수주해 1973년과 1978년 두 차례에 걸친 석유파동을 극복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73년 1억7000만 달러에 불과했던 해외건설 수주액이 1981년 130억 달러가 넘을 정도로 10년 만에 비약적인 성장을 했다.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우리나라 10대 기업집단 매출액의 6분의 1이 해외건설일 정도였다.
해외건설을 통한 외화 가득으로 1977년에는 경상수지가 일시적으로나마 흑자로 전환되기도 했다.


1980년대는 국내에 주택공급이 본격화된 시기다.
국제유가 및 금리하락 등 3저 현상으로 부동산 가격 상승이 일어나면서 1980년대 후반부터 부동산 투기가 사회문제로 대두됐다.
이에 따라 정부는 주택가격 안정화를 위해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을 추진해 분당 일산 등 5개의 신도시를 건설했다.
건설산업은 이 시기 국민 주거문화를 개선하고 삶의 질을 높여주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1980년대는 또 전체 건설공사에서 민간공사의 비중이 크게 증가한 시기다.
1960년대 및 1970년대에는 공공공사의 비중이 60~80%를 차지했지만 1988년 공공 대 민간의 비중이 39대 61로 반전되면서 민간공사의 비중도 갈수록 커졌다.


그러나 1990년대 들어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건설산업은 힘든 시기를 보냈다.
1997년 79조원이었던 국내 건설수주는 이듬해 48조원까지 급락했고 민간부문 수주는 44조원에서 18조원으로 58%나 감소했다.
다행히 2000년대 들어서면서 민간투자사업이 활발히 추진, 건설산업의 숨통이 다시 트여 2001년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2009년 서울~춘천고속도로 및 인천대교 등이 준공됐다.
이 시기 해외건설 수주도 다시 늘어나면서 2009년에는 수주액이 사상 최고치인 491억 달러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처럼 건설산업은 국내에서 사회기반시설 확충, 주택공급, 생산기반 구축, 교통망 확충, 수자원 개발 등을 통해 국가경제와 국민 삶의 질을 향상시켜 왔다.
또 해외에서는 우수한 시공기술을 바탕으로 외화 획득과 국가 이미지를 제고하는 데 앞장섰다.


이처럼 국가발전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건설산업은 최근 변화를 요구받고 있다.

국내 건설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들면서 건설투자 비중이 줄고 시장이 위축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건설산업의 무대를 국내가 아닌 전 세계로 넓혀야 한다.

우리가 강점을 가지고 있는 중동 중심, 플랜트 공종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지역 및 수주 다변화를 위해 건축, 도로, 철도 등 다양한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야 한다.

해외사업의 원활한 수행과 경쟁력 확보를 위해서 인적·기술적 능력도 서둘러 갖춰야 한다.

 

이와 함께 건설산업이 성숙기에 접어든 만큼 입찰제도와 현장 안전관리, 공정한 하도급 거래 등 건설문화도 하루빨리 성숙해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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