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렴한 공무원이 3000만 원의 유혹에 빠졌다면 목숨을 버려야 씻어질 배신행위이다. 그러나 뇌물에 익숙한 철면피 공직자에게 3000만 원은 푼돈에 불과하다.”
얼마 전 한국철도시설공단 전 김광재 이사장이 뇌물수수에 대한 과오를 고민해오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국토해양부 공무원시절 청렴과 소신의 대명사로 일컬어졌던 공무원. 그래서 오히려 앞뒤가 꽉 막힌 요령없는 공직자이라는 놀림을 받아왔던 사람. 그랬던 그가 정치권에서 건넨 3000만 원을 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정치권에서 건넨 돈이라 든든한 후원인줄 알고 받았는데, 알고보니 직무와 관련선상에 있는 업체에서 나온 ‘검은 돈’인 것으로 밝혀졌다. 스스로를 “구악세력과의 힘겨운 비리 근절 싸움을 벌이고 있다”고 자평해온 사람으로서는 견디기 힘든 과오였던 것이다.


이를 두고 업계에서는 검찰의 수사태도가 편파적이지 않나하는 의혹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 철도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철피아 척결을 위한 수사의 첫 타깃이 김 전 이사장과 삼표E&C에 맞춰져 있는 걸 보고 하나같이 ‘헛발질 수사’라고 지적했다. 업계 사람들은 이어 일단 김 전 이사장과 삼표E&C로 수사의 운을 뗀 뒤, 권력의 핵심부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했다. 다만, 말 그대로 권력의 핵심부에 검찰이 과연 어떻게 접근할 수 있을까를 우려하고 있었다.

 

실제로 이번 수사가 시작되자 업계에서는 검찰의 칼끝이 최종적으로 어디를 겨눌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업계가 검찰의 수사방향을 주시하는 것은 전직 김광재 이사장과 삼표E&C에 대한 수사는 비리척결 수사의 시작 신호에 불과할 뿐, 몸통은 따로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는 대목이다.
특히 철피아 뒤편에는 20여년 전부터 두 개의 외국계 기업이 연관돼 있었다는 것 또한 철도업계 사람이라면 다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는 이 두 업체의 신사답지 못한 상대방 헐뜯기와 상대를 끌고 들어가는 ‘물귀신 수법’으로 인해 철도시장 인맥들이 서로 반목하고 있다는 사실도 잘 알려져 있다.


검찰의 수사 방향이 양측의 주장을 동시에 살펴봐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자갈궤도는 팬드롤, 콘크리트 궤도는 보슬로가 우위’에 있는 것으로 알려진 가운데, 자갈궤도가 일반적이었던 시절에는 팬드롤 제품이 한국시장을 독점해왔었다. 지금도 팬드롤 제품이 국내 60%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그러나 고속철도가 생기면서 자갈궤도보다 콘크리트 궤도가 더 좋은 성능을 내면서 갈등이 시작됐다. 경부고속철의 경우만 하더라도 자갈궤도가 198㎞이고 콘크리트궤도는 27㎞에 불과하다.
그러나 호남고속철의 경우 오송~광주 179.8㎞ 가운데 자갈궤도는 7.7㎞이고 콘크리트궤도가 172.1㎞로 역전돼 있다. 보슬로가 득세하고 팬드롤이 시장을 잃을 수 있는 갈등상황이 발생된 것이다.

 

실제로 호남고속철의 보슬로 제품 채택이 시작되면서 철도업계가 시끄러워지기 시작했다. 때마침 앞뒤 꽉 막힌 요령없는 사람이 철도공단 이사장이라는 현장에 와서, 자신의 시각으로 바라보니 콘크리트 궤도의 레일체결장치는 보슬로 제품이 합당한 것이었다. 김 전 이사장이 요령꾼이었다면 자기소신을 굽히고 전임자의 업적을 답습하면서 물의없이 임기를 마치고 나왔을 것이다. 이런 관행이 관피아의 먹이사슬이요, 관피아가 기생하는 토양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 대통령이 척결하라는 관피아가 어떤 것인지를 짚어봐야 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놓고 보면 고 김 전 이사장은 박대통령의 지시 이전에 관피아 척결에 앞장섰다는 아이러니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실제로 이 요령없는 사람은 모든 전임자의 결정을 무시하고 원점에서 검토, 보슬로 제품을 채택했다. 때마침 보슬로의 레일패드(레일쇠와 바퀴쇠의 마찰을 줄이는 가죽)는 고속기관차가 시속 300㎞이상 달려도 찢어지지 않아야 하고 말랑해야 하며(탄성계수), 이 탄성계수는 5년 이상 성능이 보장돼야 하는 조건을 충족하고 있었다. 
철도기술자들도 이 결정이 맞다고 입을 모았지만, ‘관료사회의 정분’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면, 팬드롤 제품을 배척하고 보슬로 제품을 채택한 것은 아무리 자갈궤도가 콘크리트궤도로 바뀌었다 하나 ‘선배의 업적을 뒤엎는 죽일 놈’인 셈이었다. 이 때문에 국회의원으로 신분이 상승한 전임 이사장과도 많은 갈등을 빚어왔다. 심지어 인신공격성 발언이 오가기도 했고, 국회의원에게 덤빈 괘씸죄에 걸려 같은 당 동료 의원에게도 표적이 돼  뭇매를 맞기도 했다.


‘시험성적서 위조문제’ 역시 같은 당 의원이 동료애를 발휘한 지원사격의 도구였을 뿐, 성능기준이라는 문제의 핵심과는 별개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 때문에 故 김 전 이사장도 국회의원처럼 면책특권의 파워가 그리워졌을 것이다. 청렴했기에 가난했던 그였기에 정계진출이라는 유혹에 더욱 쉽게 넘어가는 과오를 저지른 것으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김 전 이사장을 옹호하자는 게 아니라, 더 큰 비리가 있을 수도 있는데, 현재로서는 작은 비리가 모든 책임을 뒤집어쓰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고자 하는 것이다. 수사가 여기서 중단돼서는 안 된다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또한 수사가 더 진행되더라도 이미 편파적인 수사라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양대 축으로 나뉘어져 있는 상황을 모를 리 없는 검찰이 한 곳을 먼저 급습하는 것은 다른 한 곳에 증거인멸과 자료은닉의 시간을 벌게 해 준 결과를 초래했다는 것이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른 한 곳은 상당한 준비와 방어의 시간을 벌게 됐다는 것이다.


시간은 줬거나 말았거나 수사는 공평하게 진행되고 마무리됨으로써, 관피아 철피아 척결과 함께 두 번 다시 세월호와 같은 비극이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수사를 지켜보는 이들의 한결같은 바람이다.


2014년 7월 11일
조관규 편집국장

저작권자 © 국토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