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여러분, 최악의 경우 바닷물에 뛰어들어야 할지도 모를 비상상황입니다. 그러나 4월의 바닷물은 수온은 대단히 낮기 때문에 구조선이 올 때까지 최대한 갑판에서 버티셔야합니다. 아울러 최악의 비상사태가 오면 어린이와 노약자 그리고 여성 승객들과 함께 수학여행길에 오른 학생들부터 우선 구조할 수 있도록 승무원과 승객 여러분들은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열일곱 젊은 학생들은 장차 이 나라 대한민국을 짊어질 꿈나무들이니까요. 그럴 일이야 없겠지만, 최악의 상황이 발생하면 우리 승무원들은 승객 여러분들과 특히 젊은 학생들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입니다. 우리는 이제 퇴물이고 여러분들은 이 나라의 장래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젊은 여러분들은 훌륭히 자라서 장차 이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나가는 주역으로 성장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어른이 되어 지금과 똑같은 사고에 직면한다면, 여러분들도 지금의 우리 어른들처럼 행동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 시간으로 돌아가 똑같은 실수로 똑같은 사고가 설령 발생했다 하더라도 선장이 이렇게 대응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아무리 배가 낡았고, 아무리 대한민국의 해운업계가 부패해 있었다 하더라도 선장이 배와 함께 생사를 같이 해야 한다는 정신으로 무장돼 있었다면 결과는 어땠을까. 아니, 모든 가정을 다 버리고 “객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있으라”는 안내방송만 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어른을 믿고 따랐고, 특히 배에서는 뱃사람이 최고의 전문가일 것으로 믿고 따랐던 대한민국의 미래세대가 어른들의 무책임한 도피에 피어보지도 못하고 스러졌다.


세월호 참사는 뒷방 늙은이가 대한민국의 젊은 미래를 수장시킨 참극이다. 어른들의 의뭉하고 노회한 태도가 대한민국의 새싹을 짓밟은 사건인 것이다. 우리는 세월호 참사로 인해 화폐가치로 환산할 수 없는 무형의 나라재산을 잃었다. 또한 우리 국민은 당사자의 직접슬픔과 함께 그 슬픔에서 파생된 간접슬픔에 잠겨 있다. 목하 대한민국에는 집단우울증이 확산되고 있다. 나라의 모든 축제가 취소되고 어린이날 행사도 취소되는 등 국가의 경제활동이 마비되고 있다. 국가적 손실이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국가적 차원의 손해가 발생한 만큼 원인제공자에게 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 세월호 참사가 정상적으로 마무리되려면 세월호가 국가에 끼친 유무형의 손해에 대해 응분의 배상을 해야 한다. 승무원과 선장만의 책임이 아니다. 선장에게 주인의식을 가질 수 없도록 처우한 선사의 책임이며, 나아가 선사를 좌지우지한 ‘보이지 않는 손’이 있었다면 그 손을 찾아내 배상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땅에 두 번 다시는 ‘어른들의 잘못으로 인해 젊은 새싹이 희생되는 참극’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가 정비돼야 할 것이며, 아울러 최선의 속도로 마지막 실종자까지 속히 구조해 타들어가는 부모의 가슴을 달래줘야 할 것이다. 이와는 별개로, 시민단체는 국민을 대신해 원인제공자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해 줄 것을 당부하고 싶다. 국민 모두가 피해자이니 만큼 시민단체는 소송을 승리로 이끌어 국민 개개인의 정신적 금전적 손해에 대해 배상받을 수 있도록 노력해 주기를 바란다.

 

2014년 5월  2일
조관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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