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을 며칠 앞두고 있던 지난해 12월 14일 오후 울산 용연 앞바다.
세상은 대선으로 시끄러웠지만 울산신항 북방파제 공사에 투입된 석정건설의 콘크리트 타설 선박 석정36호는 바다 속 콘크리트 타설작업에 분주했다. 이미 풍랑주의보가 발효됐지만 석정36호는 대피에 늑장을 부리고 있었다.

 

오후 늦게 석정36호가 피난을 하려했을 땐 6개의 해저 지지 앵커(닻) 중 2개가 꼬여 이동이 불가능해져 버렸다. 해상교통관제센터는 꼬인 앵커를 절단하고 이동하라고 지시했지만 현장소장은 이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

 

7시10분경 갑자기 큰 파도가 석정36호로 밀려왔고 선상에 설치된 크레인이 그 충격에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선체를 덮쳤다. 석정36호에 승선중이던 24명은 석정호와 함께 그대로 차가운 밤바다에 빨려 들어 갔다. 이 사고로 현재까지 10명이 사망하고 2명이 실종된 상태다. 사망자 중에는 19살의 고교 실습생도 포함돼 있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고에 대해 안전조치 미흡과 함께 최저가 발주에 의한 무리한 공기단축도 원인을 제공한 것이라고 입을 모으고 있다. 최저가 발주 공사를 덤핑가로 수주한 건설업체는 손해를 안 보기 위해 원가를 절감해야 하고, 하도급업체도 채산성을 맞추기 위해 공기 단축을 감행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안전은 뒷전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최저가발주 방식은 가장 객관적이고 예산절감 효과도 큰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여기에다 리크스 부담 없이 프로젝트를 진행할 수 있어 공공 공사의 경우 최저가 발주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발주기관이 최저가로 발주를 완료하면 나머지 리스크는 몽땅 수주사가 떠안게 된다. 수주가 절박한 건설 업체로서는 우선 공사부터 따고 보자는 심리가 작용하게 되고, 무리수를 두게 될 가능성도 높아진다. 물론 손해 보는 장사라면 안하면 되지 않느냐는 반론이 제기될 수는 있다. 하지만 건설경기의 경착륙이 본격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건설업체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는 상황이다.

 

사실 최저가 발주 방식은 예산절감과 책임회피 효과가 크다는 점에서 행정편의주의적 방식이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발주방식을 선택할 때 발주자의 조직 역량과 경험의 실체에 대한 분석이 우선된다. 즉 발주처가 해당 공사를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지, 어떤 조직과 인력을 보유하고 있는지 등 역량에 따라 발주 방식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이유는 건설업체에 모든 책임을 일방적으로 전가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석정36호 침몰사고 이후 원수주업체와 하도급업체인 석정건설이 모든 책임을 감수하고 있는 모습이다. 하지만 공공기관이 여전히 최저가 발주에 기대는 한 제2, 제3의 석정36호가 나오지 말라는 법은 없다.

이제 최저가 발주가 최선인지에 대한 깊은 고민의 시간을 가질 차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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