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떤 시골마을에 씨름으로 이름을 날리던 한 청년이 있었다. 기골이 장대하고 힘이 좋아 팔도에서 모인 내로라하는 장사들도 그를 꺾지 못했다. 씨름대회 때마다 쌀가마니와 황소를 챙겨오니 선망의 대상인데다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하루는 마을에 방이 붙었는데, 내용인즉 주민투표를 실시해 인기 많은 사람이 당선되는 ‘구케의원’이라는 것을 뽑는다는 것이었다. 청년은 동네 원로를 찾아가 “마을에 인기 많은 사람은 저 뿐이니, 출마하겠다”고 아뢰었다. 원로는 “자네가 헌법 제 1조 1항이 뭔지 아느냐”고 물었고, 씨름만 할 줄 아는 청년은 당연 “모른다”고 답했다. 원로는 “그러면 나가지 않는 게 마을과 나라에 해가 되지 않는 일일세”하고 타일렀다.


그리고는 60년의 세월이 흘렀다. 대한민국은 세계 10위권 경제강국으로 성장했고, 21세기 첨단 선진시대는 19대 국회를 맞이했다. 2012년 10월 24일, 국회 의사당 본관 5층에서는 19대 첫 국토해양위원회 국정감사가 열렸다.


질의에 나선 대전 동구 출신 새누리당 이장우 위원(47)은 대전 지역 홍도육교의 지하화 사업 지연문제를 따져 묻는 과정에서 주성호 2차관(55)을 지명한 뒤 “왜 똑 바로 안 하는 거야”라고 반말을 내뱉었다. 그의 침략행위는 12살 손위인 권도엽 장관(59)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관이 그 따위로 하니까 일이 안 되는 거예요”라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급기야 “대전시민 150만명이 그렇게 우습게 보여요? 국회의원들이 이야기 하는 게 그렇게 우습게 보여요”라는 말까지 쏟아냈다. 
 

앞서 이 위원은 위원장에게 △자료제출 거부와 거짓증언, 150만 대전시민을 기망한 사유로 김광재 철도공단 이사장을 위원회 차원에서 해임을 결의해 줄 것과 △증인감정 등에 관한 법률에 의거 고발조치 할 것과 △(홍도육교 지하화 사업을 포함한) 총리령 정부사업 전반에 대해 감사원에 감사요청을 결의해 줄 것을 요청했다. 국정감사인지, 150만 표심을 등에 업고 위세를 부리는 화풀이 장소인지 분간이 어려운 지경이었다. 


21세기에 열리는 국토해양위 국정감사라면 적어도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우리나라 건설경기도 심각한 타격을 받고 있다, 대책은 없느냐. 우리 정치권에서 뭘 도와주면 되겠는가? △지금은 해외 기업과의 경쟁시대다. 시공은 제법 한다하나, 디자인 설계 컨설팅 분야는 뒤떨어지고 있다. 원인은 뭐고 대책은 뭐냐? △해외 공사에 우리나라 장비업체도 따라 나가면 해외 수주액의 15% 정도는 우리 돈이 될 텐데, 방법은 없겠는가 등등 글로벌 시대의 질적 경쟁력 강화를 위한 문제점과 대안을 찾아 머리를 맞대야 했다.

 

마을의 이익보다는 국가 전체의 이익과, 세계 경쟁력을 높이는 정책 대안이 제시되는 것이 ‘시대에 맞는 국감’이 아닐까하는 생각이다. 21세기를 살아가는 마을 원로는 이 위원의 이 같은 행태를 두고 “나가지 말라고 했음에도 나가서는 결국 동네 망신시켰다”며 통탄할지, 아니면 고함지르고 윽박지르고 협박한 것은 마을을 위해 그런 것이니 “시대의 품격에 맞는 질의였다. 잘했다”고 칭찬해줄지 의문이다.

 

속기록과 국회 홈페이지 영상회의록시스템을 통해 언제든 질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으니, 마을 원로의 반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나아가 “150만 대전시민이 그렇게 우습게 보여요”라는 협박성 발언에 대해 증인석이 아닌 기자석에 앉은 국민은 대신 답하고 있다. “150만 대전시민이 우습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다만, 그 옛날 인기는 많으나 무지한 씨름 청년처럼 호가호위의 위세를 부리는 당신의 모습이 우습게 보일 뿐입니다.”

 

2012년 10월 25일
조관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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