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 논현동 대한건설협회 회관 정문 앞에는 24일 현재 하도급 업체 한 관계자가 15일째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아성이엔씨(대표 김진호)라는 토공 전문건설업체에서 이화공영(대표 최삼규)을 상대로 벌이는 것이었다.

 

내용은 이화공영이 원청사로 참여한 강원도 철원군 서면 지역의 상명대학교 교육연구 등 복지시설 중축공사 과정에서 손해를 입었으니 보전해 달라는 것이다. 땅파기 공사과정에서 암반이 발견돼 추가비용이 발생했고, 특히 공기가 당초 8개월에서 18개월로 늘어나는 바람에 1억3000만원의 추가 비용이 발생했다는 요지다.


대부분의 1인시위가 그렇듯이 일정부분 억지주장이 있게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화공영 기획실 관계자는 “말도 안 되는 억지 주장으로 시위를 벌이고 있다”고 잘라 말했다. 공기연장에 대한 변경계약이 체결됐음에도 공사중단 기간의 간접비를 요구하고 있으며, 비용 또한 정부의 표준품셈보다 터무니 없이 높은 비용을 요구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나아가 1인시위로 허위사실을 유포하고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킨 혐의로 이미 강남경찰서에 고발조치를 취한 상태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화공영과 현직 대한건설협회장의 대응 태도이다. 대한건설협회장은 자기를 상대로 누군가가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침묵으로 일관하는 ‘부작위 시위’로 맞대응해 오고 있다는 지적이다. 만약 최 회장이 건설협회 회장이 아닌 한 기업의 CEO에 불과하다면 ‘침묵의 부작위 맞대응’이라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을 지도 모른다. 사기업 경영상 협상의 전략으로 침묵이라는 카드를 쓸 수도 있다.

 

그러나 최 회장은 이화공영 대표이사이기 이전에 대한건설협회 현직 회장임과 동시에 건설단체총연합회 당연직 회장의 자리에 있는 공인이다. 특히 건설협회는 건설기업의 이익대변을 물론, 대중소기업간 건설기업의 상생을 주도하는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건설기업의 현안과 하도급업체의 애환을 청와대와 차기정부의 건설정책에 반영되도록 건의하는 막중한 역할도 맡고 있다. 이 같은 역할을 자임하고 나선 공인으로서, 침묵이라는 부작위 맞대응은 품격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비난이다. 


최 회장은 분명 척박한 건설기업의 이미지 속에서도, 그나마 존경 받는 몇 안 되는 CEO 가운데 한 사람이다. 그런 최 회장이 코 밑에서 자신을 향해 1인시위를 벌이고 있는데도 침묵으로 일관 한다는 것은 분명 뭔가 소통의 고리에 고장이 발생한 느낌이다. 특히 이곳 건물에 상주하는 공정거래위원회 관계자는 이미 “사건을 접수하면 원만히 해결하겠다”는 등의 관심을 보여 왔고, 본사에서도 전무급 인사가 다녀가 사태해결을 유도했다. 그러나 최 회장과 최 회장이 이끌고 있는 건설협회 대외협력팀 등에서는 지금까지 단 한 사람도 관심을 나타내지 않았다며 서운함을 표시했다. 


태풍 속에서 1인 시위를 벌이던 국회 앞 한 장애인에게 경찰관이 다다가 묵묵히 우산을 씌워졌다는 뉴스가 대한민국을 훈훈하게 만든 게 불과 1주일 전의 일이다. ‘원청업체와 하도급업체’의 관계는 ‘경찰과 시위자’의 관계보다 더 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건설업계의 씁쓸한 한 단면이다.

 

2012년 9월 24일
조관규 편집국장

 

저작권자 © 국토경제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