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안을 발의한 의원의 의견을 한번 들어봅시다.”
최근 국회 국토해양위 법안심사소위원회 회의장에서 ‘굴삭기 지게차 등 건설기계에 대한 리콜을 골자로 하는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에 대한 검토 과정에서 나온 한 위원의 발언이다.
국토위 법안심사소위 위원들은 대부분 이 발언에 공감, 대표발의자의 법 개정 취지와 입법 철학을 다시  한번  들어보기로 의견을 모았다.


국토위 법안심사소위원회는 본회의에서 확정할 법률 개정안에 대해 검토 작업을 벌이는 전문가 집단으로 국토해양위원 가운데 여당 6명 야당 5명 비교섭 1명 등 12명으로 구성돼 있다.
이들은 동료 국회의원들이 발의 한 법률 개정안에 대해 타당성 여부를 검토한다.


이처럼 1개의 법률개정안은 법률법안심사소위의 전문적인 타당성 검토과정을 거쳐 비로소 해당 상임위와 법사위에 회부되고, 이어 자구수정 등을 거친 뒤 최종적으로 본회의에 상정된다.
법 조문 한 글자 바꾸는데 이같이 엄격하고 혹독한 절차를 거치도록 한 것은 조문 자구 하나에 사람을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고, 한 기업을 흥하게 할 수도 패망하게 할 수도 있는 위력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법 개정으로 인해 반사적 이익을 얻는 측이 있는가 하면, 반사적 손실을 입는 측도 있기 마련이다.
이 때문에 국회는 ‘공평무사’를 위해 자구 수정 하나에 혼신의 정성을 기울이고 있고, 업역다툼이나 이익갈등이 있으면, 공청회를 개최해 쌍방간의 의견을 들어보고 조율하는 과정을 거친다.
공청회 과정에서도 갈등과 다툼이 해결되지 못하면 수정안으로 대체되거나 폐기되기도 한다.


한 때 어두운 시절에는 의원들의 허황된 동료의식으로 인해 같은 당 친한 의원이 발의하면 ‘무조건’ 찬성하고 통과시킨 적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지금은 법안심사에 대한 국회의 업무태도가 달라져 있고, 일부를 제외하고는 의원들의 입법 인식도 상당히 성숙돼 있는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실제로 국토해양위 법안심사소위에서 나온 “대표발의자의 의견을 들어보자”는 제안이 이 같은 현실을 반증하고 있다.
이들 법안심사소위 위원들이 듣고자 하는 것은 이 법의 개정으로 인해 ‘국가와 민족의 장래가 얼마나 유익한가’이다.
특히 이번 법개정으로 국가와 기업의 해외 경쟁력이 배가되고, 국리민복이 향상된다면 좋겠는데, 특정 단체의 민원해결을 위한 것이라면 폐기하든지 수정하는 게 옳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 의견청취를 요청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H의원이 발의한 이번 건설기계관리법 개정안은 굴삭기나 지게차 등 사용자 단체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법안으로 평가되고 있다.
당초 국토해양부가 지난해 3월 정부안으로 개정을 시도했다가 의견수렴 과정에서 건설기계 생산업계와 산업 담당부처인 지식경제부의 반발에 부딪혀 왔던 법안이다.
정부 발의안은 부처간의 의견조율이 되지 않으면 국무회의 심의를 통과하지 못해 폐기된다.
국토부는 업계 반발과 타 부처와의 의견조율에 실패하자, 이 법안을 부처의견을 조율하지 않아도 되는 국회에 떠넘겼다는 것이 업계의 일반적인 시각이다.


어쨌든 쌍방간의 다툼이 있는 법률안에 대해서는 국회가 발의하더라도 공청회 등 의견수렴 과정을 거쳐야 소위 ‘적법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그럼에도 의견대립에 대한 공청회 절차 등 쌍방간의 의견조율을 끝내지 못한 법안에 대한 일방적인 발의에 대해 '의견개진이라는 예우'로 일종의 '제동'을 건 것은 다른 법률안 검토에 대해서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사건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H의원실 보좌진 한 관계자는 “오는 28일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개정안 발의 배경과 취지를 설명할 예정”이라고 말하고 “훈령과 부칙을 통해 ‘시행 품목을 국토부에 위임하고 시행시기를 늦추는 방향’으로 수정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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