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으로는 담뱃불을 붙일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이 태양의 잘못은 아니다.”


별로 유명하지 않았던 18세기 영국의 비평가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의 뭍혀 있던 이야기가 최근 한국의 작가 이외수의 작품에 등장해 자주 회자되고 있다. 예술이 현실적으로 쓸모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던진 비유인데, 지금은 남 탓을 자주 대는 정치 상대방에게 주로 인용되고 있다.


2010년 11월 23일 오후.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섬 주민이 아비규환을 겪고 있을 때, 모처 기자실의 어느 구석 자리에서 들려온 한 기자의 푸념이 아직도 생생하다. “에이 빌어먹을! 나라에 X한 대통령이 앉아 있으니, 이런 사태가 벌어지지….” 오피니언 리더 그룹에 있는 기자의 입에서 연평도 사태를 ‘대통령의 잘못’으로 인식하는 것이었다. 어쩌면 그렇게 믿어버리자는 의지가 더 강했는지도 모른다.


‘남탓주의’가 이 한명 기자에 국한 된 현상이 아니라는 게 이 시대의 문제이다. 최근  한국사회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이 ‘남탓주의’의 발원지는 국회, 특히 야당이라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회는 여야를 떠나 항시 뉴스의 중심에 서 있고, 전 국민이 ‘불감청 고소원’ 선망하는 집단이다. 엘리트 그룹의 행동은 곧 본보기가 되고, 빠르게 전파되고 유행하는 특성을 가진다. 


지난 한해 배추값 파동으로 국민이 고통 받을 때 야당은 “4대강 사업으로  배추밭이 모두 수용되는 바람에 배추값이 올랐다”며 4대강 탓을 댔다. 어김없이 남탓 포장을 시도했으나 냉정한 국민들은 속지 않았다. 오히려 국회의 직무유기 때문이라고 정확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농협 수협은 왜 농수산물 유통에 관심이 없고, 돈 만지는 은행업무에만 골몰하고 있는가? 청목회 입법처럼 농수산물 유통 관련법도 일사천리로 개정할 수는 없었는가라는 의문을 품고 있다. 최소한의 유통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전달된다면 산지의 1000원짜리 헐값배추가 소비지에서 1만5000원으로 둔갑하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고 있다.


소위 후원금 제대로 들어오는 입법은 일사천리로 처리되고, 무지렁이 같은 산지 농민을 위한, 산지 어민을 위한 입법은 그들의 안중에 없다. 여야를 막론하고, 아예 관심도 갖지 않는다. 행여 TV 드라마에서나 있을 법한 국회의원 한 명이 ‘실수로’ 관심을 가지다가도 이익단체의 집단 반대로비에 부딪히면 아주 쉽게 실수를 인정하고 폐기하고 만다. 자신들의 그런 치부는 숨기고 배추값 폭등도 4대강 탓이요, 구제역도 정권의 탓이요, 연평도 사태도 정권 탓으로 돌리는 이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밝아오는 신묘년에는 이런 남탓공방이 잦아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배추파동이 일어나면 정책적 대안을 제시하고, 일사천리로 법개정 작업에 착수해 두 번 다시 ‘국회의 입법 부작위로 인한’ 국민고통이 발생하지 않도록 조치하고 이를 지렛대 삼아 지지를 구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특히 올해는 국토해양위 국감장에서 자신의 직무유기를 감추고, 양심도 슬쩍 숨긴 뒤 ‘너 때문이야’라고 목청을 돋우는 ‘쌍방 자작극’이 없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빠르게 확산되는 구제역에 대해 현 정부의 정책부서보다 더 효과적인 방역대안을 마련하고 “자, 보았느냐? 싱크탱크로 가득 찬 우리당의 정책적 지혜를…. 그러므로 이제 우리를 지지해 달라”는 참다운 정책대결의 장이 펼쳐지는 한해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 언론 또한 자성하는 한해가 되기를 바란다. 남탓유행에 따르지 않으면 무리에 끼지 못 한다는 잘못된 인식에서 벗어나, 오로지 중립적 시각에 서서 ‘잘못된 현상’에 대해서는 ‘보혁좌우’를 막론하고 추상같은 비판의 메스를 들이대는 진정한 기자의 본분을 되찾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2011년 1월 1일
조관규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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